수중사진을 시작 한 후 지금까지 피사체에 몰두하여 시간의 흐름은 물론 추위도, 동료의 안위도 잊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몇 번 있다. 잠수 중 안전에 관해서는 나름 철저하게, 때론 약게 대처해온 터라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담겨진 사진을 찾아 당시의 상황과 함께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바닷물고기에 관한 새로운 지평을 넓혀준 한 장의 사진

때는 1976년 겨울로, 서귀포 숲섬 큰 한계창에서 촬영한 사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번호 수중세계 박물관에 소개한 Nikonos 초기모델에 일명 접사링세트(extension tube)에 벌브스트로브를 장착하여 찍은 사진으로 웃지 못 할 이야기와 역사가 서려있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네거티브필름을 사용하여 여러 장을 찍었지만 현상하여 인화된 사진이 딱 한 장남아있어 물고기 전체가 나온 사진은 찾을 수 없기에 우선 급한 대로 스캔을 하여 기사에 올려보았다.
당시에 스쿠버다이빙 인구가 많지 않았고 수중사진 분야는 더욱더 그랬다. 게다가 광각렌즈를 주로 사용하여 인물위주의 기념사진을 찍었고, 그나마 현상하여 자세한 형체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에 색감이나 노출이 어느 정도 맞아주면 쾌재를 부르고 실력을 뽐내곤 하였다. 그런 가운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접사링 장비(35mm, 28mm 렌즈용 총 6세트)를 어렵사리 모두 구입하여 때 이른 접사사진을 시도해 보았다.

셔터속도는 1/60초. 초점거리는 최단으로, 노출은 최소로 좁혀 세팅하고 들어가 피사체가 사각프레임에 정확히 위치해야만 그나마 초점이 맞은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주로 갯민숭달팽이류를 찍었으며 그럴 수밖에 없음은 물고기같이 빨리 움직이는 피사체는 여간해서는 프레임에 정확히 잡을 수 없어서이다. 그래서 이 사진을 찍기까지 재밌는 스토리와 남다른 의미가 탄생하게 된 것 같다.
겨울방학에 콤프레서가 있다는 이유로 몇 개 대학 동아리팀원을 인솔하여 서귀포 겨울원정을 떠났던 시절로 웻슈트(습식잠수복)를 입고 물에 뛰어 들었다. 물론 접사세트를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서 말이다. 바닥에 닿아 작은 바위로 이뤄진 평원을 지나가다 보니 눈에 띠게 화려한 물고기 한 마리가 말미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보통 물고기는 다이버가 다가가면 도망가기 일쑤인데 이 녀석은 고기를 잡아먹고 산다는 말미잘속으로 살려달라는 듯 파고들어 굉장히 신기했다. 그리고 잘하면 접사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모여 그야말로 장기전에 돌입하였다. 정말 인내와 끈기로 버티면서 속사가 아닌 조심스럽게 벌브를 바꿔가며 한장 한장 셔터를 눌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호흡이 빡빡해짐을 느껴져 *저장밸브를 내려가면서까지 앵글에 몰두하였다. 꽤 긴 시간 숨을 멈추고 셔터찬스를 노리는데, 어딘가 이상함을 감지하여 급하게 동
료를 살피니 추위로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 겨울 수중에서 근 30분을 넘게 추운 줄도 모르고 한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었으니 이를 곁에서 바라만 보던 버디는 얼마나 괴로웠을 까라는 생각에 이르니 나 역시 잊고 있던 추위가 엄습해왔다.
집중력이 추위도 물리치는 불가사의한 또 다른 힘을 발휘하는 경험의 시작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접사사진에 매력을 터득하였고, 여러 권에 걸쳐 발간한 수중생물도감을 비롯한 과학전집,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수중세계 발행을 멈출 수 없게 만들어 준 매우 특별한 한 장의 사진이다.
편집자 주
*저장밸브(reserve valve)로 모양새로 일명 J-valve라 칭하는 공기통밸브의 한가지로 개방과 잠금 기능 외에 반대편에 보통 30에서 50bar정도의 압력까지 이겨낼 수 있는 스프링장치가 설계된 밸브로 호흡기 잔압계가 없거나 귀할 당시 공기가 스프링 힘보다 약해져 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일종의 경고 장치이다. 이 밸브를 내리면 스프링 힘이 제거되어 완전개방상태로 공기 통안의 남은 공기를 모두 쓸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밸브에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도 있어 기회가 되면 사진과 함께 소개하도록 하겠다. 요즘에는 전압계와 다이빙컴퓨터의 발달로 생산되지 않고 있으며 보통 K-valve라 불리는 공기통이 주로 생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