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의 세노테, 바하마의 딘스블루홀, 그리고 온두라스의 로아탄. 프리다이빙을 알게 된 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다. 100여명의 프리다 이버들이 참여한 프리다이빙 세계챔피언십을 개최한 경력이 있던 온두라스의 로아탄은 바다 여건과 트레이닝 시스템은 보장 되어 있었다. 그래서 바하마에 들린 김에 카리브해에 좀 더 몸을 담그고 싶어 처음으로 가보게 될 로아탄으로 급 행선지를 틀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팬더믹이 시작된 이 후, 오랫만에 구름 따라 바람따라 또 흘러가보기로 했다.



“올라, 무초 무초, 무이 비엔~(Hola, mucho mucho muy bien~)”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커피 맛을 잘 모르지만, 내 입에도 기가 막힌 커피 한잔을 마시고 값을 치르고 나니 렘피라(온두라스 현지 화폐) 거스름돈이 내 손에 쥐어졌다. 점점 더 온두라스라는 나라 땅에 발을 디딘 것이 실감났다. 무성하게 우거진 정글을 연상케 하는 푸르른 나무들 사이로 뻗은 길을 굽이굽이 지나, 밝은 하늘 빛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카리브해의 환대를 받으며 숙소에 도착했다. 보트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해먹이 놓여있던 숙소의 모습은 지상 낙원을 떠올리게 했다.
오후 6시 30분. 레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해변을 거닐다가, 수상 택시 덕(Dock)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이글이글 타 오르던 한여름의 태양을 보내고 저물어가는 석양에 코코넛 쥬스를 마시고 있으니, 프리다이버들이 하나 둘 모여들 었다. 이곳은 로아탄 프리다이버들의 선셋 모임장소였다. 아침 해가 뜨면, 어김없이 9시에 다이빙 포인트로 보트 가 출발했다. 로아탄의 유일한 프리다이빙 센터인 “로아탄 프리다이빙 스쿨 앤 트레이닝 센터(Roatan Freediving school & training center”는 모던해 보이면서도 허름한 컨테이너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계 최 고의 플랫폼 보트를 보유하고 있다. 플랫폼으로 개조한 카타말란 보트와 시모나(Simona)라는 이름을 지닌 프리다이 빙 센터 보트, 그리고 또 하나의 플랫폼이 해변에 정박해 있었다. 8년간 프리다이빙 여행을 하며 세계를 누비는 가운 데 본 가장 큰 규모의 프리다이빙 전용 보트 시스템을 지닌 센터의 모습이다.
2021년 8월 중순, 로아탄 프리다이빙 스쿨은 제8회 캐리비안컵 프리다이빙 국제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회를 앞두고, 주최자인 에스테반(Estavan)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게 되었다. 에스테반은 이미 일곱번 주최한 경력을 토대로 재치있고 신속하게 스태프들에게 각자의 임무를 잘 할당했고, 오리엔테이션에는 화상으로 미팅에 참 여해 주최자와의 만남도 놓치지 않게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이었지만, 에스테반의 굳은 의






지와 열정으로 많은 스폰서들과 세이프팀, 미디어팀은 순조롭게 꾸려져 있었다. 그러나 100여명에 가까웠던 예전의 대규모 선수들 숫자와 달리, 이번에는 코비드19 버전으로 이십여명의 선수들로 소규모 선수 명단이 꾸려졌다. 하나, 둘 다른 나라에서 다이버들이 입국하며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다. 모두들 에스테반의 주의 사항을 철저히 따르며, 잦은 코비드 테스트를 통해 음성결과를 서로 확인하며 보트에 올랐다.
바하마 딘스 블루홀에서 버티칼 블루 대회 준비 트레이닝을 시작할 때는, 2주를 적응 기간으로 계획했다. 이유는 오랜 수심 트레이닝 공백 기간 이후,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편안해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기 때문 이다. 특히나 몸이 풀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내 몸의 특성을 고려해서 말이다. 그 기간이 2주였다. 그러나 몸이 적 응하는데 2주가 걸린 바하마 딘스 블루홀과는 달리, 로아탄 바다에 몸을 담근 첫 날, 첫 다이빙, 이미 릴렉스, 적응 완 료였다. 100미터 넘는 수면의 진한 파란 바다색과 달리 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밝아지기 시작하는 것이 마치 내 몸을 마구 감싸 안아주겠다고 로아탄의 캐리비안 바다가 손짓하는 듯 했다. 어두운 딘스 블루홀에서 수중 라이트를 후 드에 달고 하는 다이빙에 달련된 내 몸의 반응은 이렇게 편안하고 포근하다고 반응했다. 왜 경험 많은 프리다이버들이 다이빙 하기에 좋은 바다 환경을 추천할 때 이곳, 로아탄을 TOP3안에 꼽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온두라스에서 만나게 된 새로운 친구들은 내 인생 처음 만나는 국적의 프리다이버들이 많아 새로운 바다 환경만큼이 나 인상 깊었다. 흔히 만나는 미국, 유럽 프리다이버들이 아닌,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아르헨티나, 멕시코, 우루과이, 이스라엘, 남아프리카, 폴란드, 캐나다, 중국, 덴마크, 온두라스의 다이버들과 함께 부이를 공유한 경험은 정말이지 값 진 경험이었다. 언어, 문화, 종교를 넘어 프리다이빙이란 매개로 바다에서 고요함 속에 행복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8번째로 열린 캐리비안컵 대회는 여러 곳에서 역사와 전통을 엿볼 수 있게 잘 준비되어 있었다. 세이프티장을 비롯해 세이프 다이버들은 프로토컬에 의해 체계적으로 훈련이 이루어졌다. 미디어 팀, 스태프 모두 손발이 척척 잘 맞게 돌아가는 듯 했다.



대회는 총 7일간 진행되었는데, 선수 당 6번의 다이빙의 기회가 주어졌고, 종목은 CWT, CWTB FIM, CNF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연속 3일 경기를 하고, 하루 쉬고, 또 연속 3일간 다이빙하는 일정이었는데, 모 든 선수가 부상이나 사고 없이 전체 일정동안 원하는 만큼 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프리다이빙 대회 광경이었다. 가끔 블랙아웃, 폐압착, 고막 파열 등 여러 이유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회 중간에 중도하 차해야 하는 다이버들을 보게 되어 안타까운데, 이번 대회에서는 마지막 날 단 한 명의 수면 블랙아웃 사례만 발 생했을 뿐, 어떠한 사고도 없이(세계기록갱신도 없이^^) 안전하고 무난하게 마무리 되어 훈훈했다. 팬더믹으로 우려되는 세상의 정세와는 반대로, 대회는 평온하게 흘러갔다.
또 다른 훈훈한 광경이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 3명이 함께 참여한 엘살바도르 선수들의 모습이다. 선생님은 본인 다이빙 직전까지도 학생들이 수면 프로토컬을 잘 수행하는지 보느라 학생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선생 님은 대회 마지막 날 다이빙에서 엘살바도르 국가 기록 갱신 다이빙을 멋지게 성공해서 대회장에 환호성을 가져 다주었다. 그리고 풍성하게 컬이 한껏 살아있는 구릿빛 피부의 매력적인 여성이 카메라를 들고 이들을 한시도 빠 짐없이 따라다녔다. 그녀는 엘살바도르 정부 지원을 받아 굴을 캐는 남성 3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촬 영 중이었다. 그리고 굴 캐는 남성 3명은 한 달 전 처음으로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했고, 시작한 김에 선생님 과 이번 캐리비안컵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수줍게 생긴 햇빛에 그을린 얼굴도 비슷, 슈트도 비슷, 말하는 표정, 행동도 비슷한 이 세 명이 프리다이버로서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이번 대회의 볼거리였다. 그리고 최초로 온두라스 선수가 대회에 참여했다. 늘 그렇듯 주최국의 선수가 대회에 참여하면 대회가 더욱 빛이 나기 마련이 다. 안드레아(Andrea)라는 당찬 온두라스 여성 선수가 22미터 다이빙에 성공해 화이트 카드를 획득할 때마다 세 계 신기록 달성 수준의 관객 환호성을 자아냈다.
매일 고요하고 진지했던 대회장의 분위기를 뒤로 하고, 대회 마지막 날에는 마지막 선수의 다이빙이 끝나자 플랫 폼 보트의 분위기는 돌변했다. 세계 최고로 멋진 프리다이빙 플랫폼 보트는 해변에 떠있는 바(Bar)가 되었고, 레게 음악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깔리면서, 저 구석에 있던 장비 박스에서 차곡차곡 쌓여진 맥주가 대방출되며 파티 가 시작되었다. 세이프팀, 스테프, 관객,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물에 뛰어들어 마지막 대회 날 기념 촬영을 하며 맘 껏 웃고 즐겼다. 보트에서 흥겹게 춤추는 중미 사람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깨를 들썩 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이번 대 회 스폰서 중 한 곳인 마얀 프린 세스 다이브 앤 리조트(Mayan Princess Dive and Resort)의 산 시몬 비치 클럽(San Simon Beach Club)에서 본격적인 폐막 식과 파티가 시작되었다. 두 명 의 디제이와 로아탄 최고의 라이 브 음악 밴드까지 섭외되어 있었 다. 리조트에서 마련한 요리사들 의 콘테스트 이벤트를 시작으로 배를 채운 후, 아름다운 로아탄의 붉은 노을을 배경삼아 근사한 폐 막식이 진행되었다. 참여한 모든 선수들을 나라별로 무대로 올라 와, 온두라스 관광청에서 마련한 환영 꽃다발과 온두라스의 기념 품을 전달하는 첫 순서로 폐막식 이 시작되었다. 메달 획득자만이 주인공인 무대가 아닌, 각 나라를 대표해 참여한 모든 선수를 독려 하는 자리로 마련된 폐막식 무대 가 오늘처럼 빛나게 보인 적이 없 었다. 이제 막 프리다이빙에 입문 한 다이버나, 취미로 프리다이빙 을 즐기는 가운데 대회에 참여한 다이버나 프리다이빙이 업인 다 이버나, 모두 대회 결과를 떠나 이번 대회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렇게 프리다이빙 대회를 통해 하나가 되는 축제의 장의 의미가 더 널리 퍼져 많은 이들이 프리다 이빙의 매력에 빠져볼 수 있길 바 라보았다. 그러는 동안 로아탄의 별들과 캐리비안 바다의 선선한 바람이 녹아든 칵테일과 중미 프 리다이버들 틈 속에 이야기 꽃은 점점 만발해가며 캐리비안컵은 마무리 되었다.

김선영 선수 _ Photo by Alex St. J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