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9/10, 198호] 동강조어 桐江棟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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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9/10, 198호] 동강조어 桐江棟魚
  • 윤혁순
  • 승인 2021.11.01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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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es Culture Museum | 물고기문화박물관

글, 사진 윤혁순
다큐멘터리스트 작품 : 월리스라인의 원시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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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회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율곡선생의 조선 성리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 조선의 회화가 나타난다. 겸재 정선을 필두로 후대에 단원 김홍도의 우리 민족의 삶을 볼 수 있는 풍속화는 조선 후기의 회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시대마다 고유한 특성을 키우고 변천해 왔다. 그러면서도 해학과 풍류적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단원 김홍도의 <동강조어>는
물이 넓은 강가 언덕의 버드나무 밑에서 풍채 좋은 어른이 길게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이미 찌를 떠난 채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내맡긴 상태여서 고기를 낚는 데는 별반 관심이 없음을 대강 눈치 챌 수 있다. 그는 결코 고기를 탐하는 낚시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낚시를 드리운 채 거기 앉아 있는가? 고인들은 낚시에 참으로 많은 상징과 서정을 담았다. 강태공(姜太公)이 드리운 기다림의 낚시와 굴원(屈原)이 노래해준 탈속(脫俗)한 낚시야 우리가 많이 아는 것이지만, 이 그림은 낚시에 담긴 상징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미담인 우정(友情)의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후한(後漢) 광무제(光 武帝)의 어릴적 친구인 엄광(嚴光)이다. 그는 뛰어난 능력으로 어려서부터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동문 수학(同門受學)한 친구가 황제로 즉위하자 홀연히 몸을 숨겼다. 광무제는 그의 어짐을 생각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제국(濟國)에서 보고하기를, 한 남자가 양가죽 옷을 입고 못 가운데 낚시를 드리우고있다 하였다. 광무제는 엄광이라 생각하고 사신을 보내 그를 맞고자 하였지만, 엄광은 사신이 세 번 돌아간 다음에야 겨우 돌아왔다. 참으로 아름다운 우정의 미담이 아닐 수 없다. 엄광이 은거하며 낚시하던 곳이 바로 절강성(浙江省) 동려현(桐廬縣)의 엄뢰(嚴瀨)였기 때문에 이 일화는 고대로 ‘동강수조(棟江垂釣)’ 니 ‘동강조어(棟江釣魚)’ 니 ‘엄릉거조(嚴陵去釣)’ 니 하여 오래 시화(詩畵)의 소재가 되었다. 

- 출처 : 한국데이터진흥원

 

대구지역출신인 산수화가인 기석 허섭(箕石 許燮. 1878~1934)의 동강조어(桐江棟魚)는 오동나무 동자를 사용하였고 노방 원단에 수묵담채로 채색되었다. 물고기를 낚아서 왼손으로 잡기 직전이고 강가에는 갈대가 만발하였다. 오동나무는 단산채봉(丹山彩鳳)이라 하는데 새 중의 새인 봉황이 나타나 아침의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매우 좋은 길한 운세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뜻이다. 풍수지리에서는 ‘봉소포란지’는 봉황의 둥지를 의미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대구지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갈대는 기러기와 함께 그리면 노안도로 노후에 편안함을 표현한다. 물고기와 갈대 노후에 잡은 대어는 무엇을 표현하는지 궁금하다. 허섭은 조선의 말기에서 몰락의 과정과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화가이다. 예술가로서는 매우 불행한 시기에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그리고 조선의 독립을 맞이하기 전에 운명을 달리하였다. 동강조어는 물고기를 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면서도 매우 크게 그렸다. 자신의 현재모습은 노화 갈대이고 오동나무는 임금이 다시 나타남을 의미하고 물고기는 독립을 상징하는 것이다. 

노방에 그리고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며 그린 <동강조어>는 단원김홍도의 <동강조어>와 비교하며 감상하면 매우 흥미롭다. 단원의 동강조어(東江釣魚)는 동녘동 자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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