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Box] 다이빙계의 작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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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Box] 다이빙계의 작은 역사
  • 이선명
  • 승인 2021.11.0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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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세계박물관 & Light Box
글 사진 이선명

수중세계를 향한 숙명 같은 사랑을 시작한지 어언 반세기를 바라보고 있으며 공교롭게도 수중세계 200호 발간과 때를 같이하게 된다. 형편을 봐야 하겠지만 의미 있는 행사를 비롯하여 스토리가 듬뿍 담긴 답례의 표시도 벌써부터 준비 중에 있다. 
몇 가지 계획 가운데 꼭 실천에 옮기고 싶은 것은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보는 자서전 집필이다. 이에는 빠지지 않고 작성한 다이빙로그북과 메모 형태의 일기장이 기억을 되살려주는 촉매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40년 가까이 발간되고 있는 본지는 전문지로서 우리나라 수중스포츠계의 그야말로 생생히 살아있는 역사책이기에 집필에 대한 부담을 많이 덜어준다 하겠다.
사설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행사스케치와 소식은 물론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화보와 함께 꾸준히 소개해오고 있으며 “다이빙계의 작은 역사” 라는 코너로 역사에 기록됨직한 결코 작지 않은 잊힐 뻔한 사실을 많이 발굴해왔다. 

1980년 미국 뉴욕에서 교육받을 당시 이태리출신 동기와 함께 야간잠수작업 직전 사진. 
동기는 Stand by Diver 역할이었고, 헬멧(Aquadine으로 기억)창에 보안경을 부친 것으로 보아 수중용접이나 절단작업을 배울 때로 보인다.

반면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내 자신에 관한 이력을 펼쳐볼 기회가 없었으며 이를 증명할 변변 한 기념사진도 많지 않다. 수중사진도 그렇고 꼭 기록으로 남겼으면 하는 오래된 사진은 더욱이 귀하다. 그래서 가치가 배가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짧지 않은 세월동안 같은 길을 걸어오면서 믿고 의지하며 함께 다이빙 하였던 선배님들 중에는 세상을 떠나셨거나 활동을 접은 분이 대부분이다. 잡지를 발행하면서부터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었으며 특성상 나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통해 전하는 게 우선이며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란 존재는 다이빙을 시작하다 보니 수중 세계라는 잡지를 먼저 알게 되고 이 잡지를 발행 하는 사람정도로 비쳐지고 있다.
그리고 특별한 가십거리가 없는 이상 개인사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에다 인터넷을 통해 알고 싶고 좋아하는 정보만 살피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의 세상이기에 그럴 것이다. 대신에 얼굴을 본적이 없는 다수의 사람들과 페이스북 같은 누리 통신망으로 소통하다보면 오래전부터 알던 다이버들 중에도 나의 과거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 자기소개를 등한시 한듯하여 늦었지만 본지를 통해 기록으로나마 남겨보겠다는 마음으로 우선 다이빙교육에 관련한 사항만 사진과 함께 적어보았다.


스쿠버다이빙 입문은 1972년 대한수중협회의 전신인 “한국스킨스쿠버클럽” 이 주관하고 동아일 보가 광고로 후원하는 강습회에 참가하여 일주일 동안 워커힐호텔 실내풀장에서 교육을 받고 초급 다이버 수료증을 받았다. 신문광고만 보고 부모님 몰래 사무실을 찾아가 강습등록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숙명과도 같았다. 상장처럼 인쇄된 수료증과 면허증 형태의 사진이 붙은 증명서를 받아 비닐코팅까지 하여 가지고 다녔으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찾을 수가 없다.

포화잠수 사전교육으로 Open Bell을 이용한 잠수준비 중에 찍은 사진.(헬멧은 Swindle로 기억)
포화잠수 사전교육으로 Open Bell을 이용한 잠수준비 중에 찍은 사진.(헬멧은 Swindle로 기억)

그 후 1973년 우리나라 최초로 PADI 강사코스가 열려 김상겸 초대회장님을 비롯하여 7명의 강사가 탄생되고 클럽에서 협회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1976년 PADI 다이브마스터 딴 후 1980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의 길에 올랐으며 6개월에 걸쳐 200미터 포화잠수 교육을 비롯 한 각종 산업잠수 기술을 “Professional Diving School of New York" 이라는 일종의 직업학교 과정을 수료하였다. 총 2회에 걸쳐 Bell Diving으로 200미터 포화잠수(Heliox) 를 실습하였다. 귀국길에 PADI 강사코스를 받으려고 준비 중에 한국의 선배로부터 한국에는 이미 7명의 PADI강사가 활동하고 있으니 NAUI라는 교육단체에 한번 도전해보라는 충고를 받아드려 Buffalo New York으로 찾아가 10일에 걸쳐 코스를 밟았다. 

 

 

 

1980년에 받은 NAUI 강사카드(증명사진을 붙일 수 없는 시절로 기억)

정말 태어나 처음으로 밤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며칠씩 굶으며 공부에 매진하여 13명중 3명의 합격자에 들 어 우리나라 전체에서 8번째, 그리고 NAUI(강사번호 5921번)로서는 첫 번째로 활동하는 강사가 되었다. 귀국 후 산업잠수사와 스쿠버다이빙 강사생활을 병행하면서 활동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울릉도에서 일명 보물선(러일전쟁당시 울릉도 저동 앞 바다에 침몰한 발틱함대 소속 드미 트리 톤수코이호) 탐색작업에 합류 하였으나 끝내는 발견에 실패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된다. 못내 아쉬웠는지 1987년 미국 휴스톤 소재 “Underwater Vehicle Training Center"에서 유 인, 무인 잠수정 Pilot 교육을 3개월 동안 받고 2,000미터 급 잠수정인 "Mantis"를 타고 내려가 심해로의 꿈을 실현하게 된다. 

1987년 잠수정 Pilot 교육을 받을 당시로 4,000미터급 잠수정(Pilot 포함 3명의 승무원 공간과 2명의 포화잠수사를 위한 공간이 분리된 잠수정)을 분해수리하면서.
1987년 잠수정 Pilot 교육을 받을 당시로 4,000미터급 잠수정(Pilot 포함 3명의 승무원 공간과 2명의 포화잠수사를 위한 공간이 분리된 잠수정)을 분해수리하면서.

 

잠수정 Pilot 교육을 마친 후, 바로 우리나라 민, 관, 군 최초로 300미터급 ROV (Remotely Operated Vehicle)를 들여와 한동안 운영하며 여러 방송물, 침몰선 수색이나 촬영 같은 재난현장에 투입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우리나라 잠수기능사제도가 생긴 후 첫 번째로 1급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CMAS 강사트레이너 3번이라는 번호를 받았다. 매 코스마다 정말 밤을 새워도 못 다할 만큼 에피소드가 많으나 자서전에 다룰 것을 약속드리며 잠수관련 초창기 교육 입문기를 몇 장 남아있는 사진과 함께 간단하게 소개해본다. 애초에 라이팅룸에 기사를 게재하려다가 다이빙계의 작은 역사라는 꼭지 명을 다시 끄집어내어 자화자찬이 아닌 중이 제 머리 깎기 심정으로 추억을 되새겨 본다.

2,000미터 급 잠수정 Mantis를 타고 미국 휴스톤 앞바다 심해로 내려가기 직전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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