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세계 박물관 Ⅶ
1943년 자크 이브 쿠스토(Jacques-Yve Cousteau)가 아쿠아 렁 이라는 스쿠버장비를 발명한지 근 80년이 다 돼가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반인이 수중스포츠로서 스쿠버를 즐기기 시작 한지도 반세기를 훌쩍 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저변확대의 결과로 이와 관련된 시장과 인구 증가는 그야말로 폭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걸맞게 각종 장비의 발전과 다양화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매년 새로운 모델의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는가 하면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도 선보이고 그 수와 종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그렇다보니 가장 기초적인 장비부터 수중촬영용 장비까지 그 발전사를 자세히 들여 다보기가 쉽지 않으며 직접 마주 대하더라도 그 시절에 직접 사용해보거나 어깨너머로 관찰 해보지 않았다면 그 사용방법이나 작동원리 등은 더욱 알기가 힘들고, 이런 여러가지들을 알고 싶어 하는 다이버도 과연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든다. 더구나 국내에서 전문적으로 골동품이라 할 수 있는 이런 장비들만 전문적으로 모으고 있는 수집가는 찾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일찍부터 마지막 꿈을 스쿠버 다이빙 박물관 건립에 두고 있었기에, 나름 대로 상당한 양의 장비를 수집해오고 있다. 이중에는 직접 사용했던 장비도 있지만 사 모으거나 독지가들이 뜻을 알고 기증한 장비들도 많다. 그래도 수중촬영장비는 초기에 발매한 것 외에는 대부분 손때가 묻은 장비가 대부분이다. 하루가 다르게 신장 비가 쏟아져 나오고 다이빙컴퓨터 같은 전자제품의 발전 속도와 편리성으로 인해 사용법이나 작동원리 등을 그때그때 이해하기도 힘들다. 반면에 오래전 장비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를 수 있겠다.
새롭게 기획한 “수중세계 박물관” 이라는 제목하에 이런 장비들을 소개하고 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나 역사 등을 함께 소개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장비를 사용 했을 당시 지금과는 다른 사용법이나 교육방법도 기억나는 데로 설명을 곁들여 보겠다. 그리고 의도적인 퍼포먼스로 장비를 손봐 실제로 사용하여 옛날을 재현해보는 기회도 가져보겠다.
혹시 독자분들 중에서도 이런 오래된 장비를 가지고 있다면 이 코너를 통해 소개해 볼 수도 있으니 많은 참여를 바란다.
2020년 9월 <수중세계> 발행인




지식밀수를 위한 책 도둑
글 이선명 _ <수중세계> 발행인
∷∷∷ 때는 1980년 미국 뉴욕주의 작은 섬 City Island. 심해잠수를 가르치는 직업학교 강의 실에서 젊은 청년이 두툼한 책 한권을 몰래 가방에 넣는다. 스스로 태연한 동작이라고 생각했으나 도둑질은 아무나 하나, 이내 지도강사의 눈에 띠어 학교 중요교재이기 때문에 외부반출이 안 된다는 제지에 머리를 긁으며 슬그머니 다시 꺼내 놓는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도둑질이 성공만하면 그야말로 우리나라 산업잠수계에 문익점이 될 수 있었는데 라는 엉뚱한 꿈이었기 에 그렇지 못한 아쉬움으로 밤잠을 못 이룬다. 그도 그럴 것이 잠수에 관련하여 그때까지 알려 진 역사는 물론 바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신기술까지 각종자료와 사진, 도표 등이 세세하게 총 망라되어있는 종합매뉴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나마 알고 있던 스포츠 잠수 수심의 영역을 넘어, Nitrox, Trimix는 물론 포화잠수까지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기체별 혼합비(수심 대에 따른), 감압절차 도표, 그리고 감압병 증상에 따른 여러 단계의 재압챔버 치료테이블까지 자세하게 계산되어 표기된 서적이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실습으로 모두 경험 했다고는 하나 그야말로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이런 매뉴얼이 없다면 귀국 후 바로 접목시키기에는 지식이 미천하였다. 지금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잠시만 뒤지면 이런 자료는 차고도 넘치는 시절이지만 당시로는 교육기간 동안 하루하루가 듣 도 보도 못한 신지식 습득으로 그야말로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을 때라 이 서적을 국내로 반입 만 한다면 우리나라 산업잠수 발전을 일시에 몇 단계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제목도 “U.S NAVY DIVING MANUAL" 이었기에 최강대국인 미국 해군만이 취급 할 수 있는 일종의 군사기밀로서 특별히 허락받아 참고교재로 사용하는 줄 알았다. 대형서점에서도 구할 수 없었기에 더욱더 욕심이 났다.
아무튼 귀국길 가방 안에는 최신형이라 할 수 있는 스쿠버장비인 조끼형 BCD(프런트타입에서 한 단계 진보한), Poseidon Dry suit 2벌, 소형 SONAR 장비, 그리고 KMB-10 잠수용헬멧 등이 이 서적과 함께 들어 있었다.
이 매뉴얼과 장비는 1981년 울릉도 러시아 발틱함대 보물선 탐사, 1984년 MBC 문화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심해탐사(서귀포 문섬 수심60m 표면공급식 헬멧다이빙), Dry Suit 착용 아이스다이빙 등 더 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수중세계로의 첫 도전에 한동안 요긴하게 쓰였다. 그리고 산업잠수사의 길에서 스포츠잠수와 수중공사 감리로 관심을 돌린 후 이 매뉴얼은 기억에서 점점 흐려져 갔다.
세월은 흘러 근 40년 만에 다이빙을 다시 시작한 후배로부터 잘 포장된 선물꾸러미를 받는다. 풀어보니 간단한 메모와 함께 이 매뉴얼이 들어있었다. 당시 후배가 이 매뉴얼을 빌려보고 싶다하여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그 뒤로 언젠가는 돌려줘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다른 길을 걷다보니 계속 미루게 되었고 오랜 세월이 지나 드디어 주인의 손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 매뉴얼을 다시 마주하니 교육이 거의 끝나갈 즈음 교재를 넣어두는 캐비닛을 열어놓고 나에게 턱으로 이 서적을 가리키며 넌지시 윙크를 해주었던 조교의 얼굴이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