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12, 199호] 국내 최초의 수중카메라 하우징 비전 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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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12, 199호] 국내 최초의 수중카메라 하우징 비전 VISION
  • 이선명
  • 승인 2022.01.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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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um of Underwater World
수중세계 박물관 Ⅷ

해설  방주원 _ 캠스퀘어 대표


1990년대는 니콘에서 출시되어왔던 Nikonos 시리즈 중 Nikonos V (five), 세계최초의 수중 SLR 카메라인 니코노스RS 처럼 자체적인 수중카메라가 서서히 시장을 잃어가고 그 대신 육상카메라를 방수하우징에 넣어서 사용하는 하우징 타입의 수중촬영장비가 성장하는 시기였다.  국내에서는 일본 Antis의 Nexus 하우징(니콘 F801, F90, F4용 하우징)이 주류를 이루었고, 일본 Sea&Sea 하우징(니콘 F90, F100용), 캐나다 Aquatica 하우징, 오스트리아 Subal 하우징 등이 그 뒤를 이어 수중카메라에서 기존 생산되고 있는 카메라 (주로 Nikon 제품)용 하우징으로 급격하게 바뀌던 시절이었다.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카메라는 니콘 F90이었고 보급기종이었던 F801, 고급기종 이라 할 수 있는 F4가 그 뒤를 이었다. 캐논 카메라는 EOS 5용 하우징이 있었지만 사용자는 별로 없었다. 살펴보면 Nikon 카메라가 Canon을 비롯하여 여타 카메라에 비해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 여러 나라에서 전용하우징을 앞다투어 생산했다기보다는 기존 수중 스트로브 시장을 Nikon사 제품이 장악하고 있었기에 별수 없이 뒤따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스트로브 동조케이블의 주요 연결부품을 복제하거나 새롭게 생산하기보다는 기존의 Nikonos용을 구매하여 조립하는게 훨씬 수월하고 원가절감의 효과가 크다는 이유도 있었다. 게다가 이 부속품은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고 자사제품인 Nikon카메라 하우징용이 아니면 부품공급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이러닉하게도 오랜 세월 수중카메라와 스트로브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Nikonos시리즈는 니콘 F90, F4등의 자사 SLR필름카메라의 성능이 Nikonos를 압도하게 되면서 하우징 제조사에게 그 자리를 점점 내주게 되고, 니콘의 수중촬영장비는 세계 최초의 수중카메라라는 자부심만 남긴 채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굳이 비교하자면 지금 소개하는 국내최초 카메라 하우징인 "Vision" 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하겠다. 

1996년에는 드디어 한국에서도 수중카메라용 하우징을 처음 만들게 되었는데 이선명(당시 Subal 하우징을 수입판매하고 있던 ‘두성해양연구소’ 대표) 본지 발행인이 그 주역이다. 이선명 대표는 당시 따로 제작되어 시판되고 있던 니콘 F801과 F90용 하우징을 카메라 베이스(고정 지지대)만 바꾸면 하나의 하우징으로 두 가지 모델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디자인에 채택하였다. 이는 개인적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업용으로는 세계최초였다. 


이선명 대표는 어안렌즈용 유리 돔포트는 물론 60mm용 마크로 포트, 105mm 렌즈용 연장링 뿐만아니라, 누수테스트를 위한 고압의 수압테스트 챔버도 제작하였다. 수압 챔버는 하우징 10대가 동시에 들어가도 남는 크기였으며 당시 또 다른 사업으로 계획하고 있던 방송용 ENG 카메라 하우징도 너끈히 들어 갈 수 있도록 하였다. 상용압력도 11기압(수심 100m) 이상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우징을 원래 제작하게 된 이유는 얼마 되지 않은 내수시장보다는 온전히 해외로 수출하기 위한 사업계획이 바탕이었다. 그래야만 하였고……. 그래서 본체와 손잡이는 알루미늄 주조방식을 채택하여 어느 정도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었다. 셔터레버나 모드 다이얼, 조리개 기어 등은 기계가공으로 생산하였고 손잡이는 도장처리를 두껍게 하여 손으로 만졌을 때 부드러운 느낌을 주도록 하였다. 노출이나 줌렌즈, 초점조 절용 톱니바퀴용 기어까지 시제품은 물론 어는 정도 대량생산 체재를 마쳤었다.

하우징의 기본 구상과 세부 디자인, 도안, 그리고 투자는 이선명대표가 맡았고 가공, 생산 등 기술적인 면은 청계천에서 기계가공 일을 하던 원로다이버이기도 한 김성희 라는 분에게 외주를 주었다. 한국 최초의 수중 카메라 하우징이라는 미래를 걸었기에 하우징의 브랜드명도 ‘비전’으로 정했다. 비전하우징은 브랜드명, 모드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기능 안내 문구용 스티커는 물론 돔포트 보호를 위한 잠수복 원단으로 만든 돔포트 커버까지 주문생산을 마쳐 솔직히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판매를 위한 준비를 마쳤고 완성 단계인 시제품을 가지고 국내에서 열리고 있던 잠수용품 장비 쇼인 "KUSPO Show" 에 출품까지 하였다. 대형 열대 해수어 어항까지 동원하여 전시를 하여 많은 관심을 끌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튼 시작은 장대하였으나 그 뒤로 전혀 예상치 못한 흑역사가 벌어져 제대로 Vision을 펼치지 못하고 일본의 Nikonos 와 함께 거의 동시대에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가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 시절 일본의 하우징 시장에 인류 최초로 1960년 세계 최심부인 마리아나 해구 잠수에 성공한 잠수정의 이름을 딴 “Trieste" 라는 브랜드의 하우징이 시판되고 있었고 이선명 대표도 맨 처음 사용한 하우징이 이 “Trieste" 하우징이었는데, 시간이 나면 한번 찾아봐야겠지만 이 제품 이 Nexus나 Sea&Sea 보다 먼저 발매된 일본 최초의 하우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든다. “Trieste" 하우징 제조사는 Nikon F801 카메라에 뒤이어 F90의 등장으로 새로운 카메라 하우징을 만들어야 하는 차에 한참 국산제품을 개발 중인 이선명 대표와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져 일본 내에서 Vision을 Trieste 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OEM 방식이지만 시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대량주문이 들어온 격이라 계약서도 없이 구두로나마 선뜻 응했고 대량생산체재로 계획을 바꿔 투자를 더 늘리게 된다. 어느 정도 수출가격도 정해져 정말 신바람이 나서 제작에 나섰고 완성품이 나와 테스트를 거쳐 수출 직전에 이르렀다.

 

현재 대부분 공산품이 OEM/ODM 방식으로 제작원가가 저렴한 중국이나 여타 개발도상국가에서 생산되듯이 당시에는 일본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제작하여 판매하는 것이 유리하였기에 이런 계약이 가능하였다. 그리하여 비전 하우징은 Trieste 기존제품과 렌즈 포트 등의 규격을 맞추어 서로 호환되도록 하였다고 한다. 어쨌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출 물량과 선적, 대금결제 등 구체적인 사항을 문의하는 과정에서 한 장의 텔렉스(Telex)를 받는다.

 

밝힐 순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인 누군가가 일본 주요 판매처에 “앞으로 시판되는 Trieste 제품은 일본 생산품이 아닌 그야말로 기술이 일본보다 뒤진 한국에서 만든 제품”이라는 소문을 퍼트리고 있어서 Trieste 본사로서는 사전에 구매하기로 결정된 가격보다 훨씬 더 낮추지 않으면 수입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정말 청천벽력 같은 서신이었고 짐작되는 그 누군가를 어떻게 하고 싶을 정도로 미웠으나 다이빙계 선배라는 이유로 원망도 내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Trieste사에서 다시 제시한 금액은 어떻게 파악했는지 거의 제조원가 밖에 안될 정도여서 손해 보면서까지 해보려면 해보라는 뜻이 담겨 있어 더욱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하우징 제작 사업은 철수하였고 이미 조립을 마친 하우징 20~30 set 가 김성희씨를 통해 지인들에게 팔려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계약이 무산되고 얼마 되지 않아 "Trieste"도 문을 닫았다. 현재 Korea Senior SCUBA Society 회장인 박효진(Diving Park)씨를 비롯하여 몇몇 분이 오랜 시간 별 문제없이 잘 사용했었고 지금도 온전 하게 잘 보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그 뒤로 이선명, 김성희 두 사람은 Vision 하우징 제작에 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수입원가가 1억원에 육박했던 방송용 카메라 하우징을 제작하여 거의 1/3 가격 으로 MBC 방송국에 납품하여 일본산 수입대체효과를 누릴 수 있었으며, 다른 방송국의 기존 하우징을 수리하기도 하고 새롭게 제작해 주면서 Vision 하우징에서 입은 피해를 어느 정도 회복하였다고 한다. 한때는 수중 스트로브 생산에도 꿈을 가졌으나 본지 발행을 시작하면서 일에 얽매여 포기 했다는 말도 전해 온다.

 

적당한 비교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쿠버 장비 개발에 “작크 이브 쿠스토” 와 “에밀 가냥”이 있듯이 수중 카메라 하우징에 있어서는 이선명, 김성희 이 두 사람의 족적이 실존 하는 Vision 하우징과 함께 우리나라 수중촬영장비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고 본다.

 

* 위의 기사는 하우징 개발자인 이선명 본지 발행인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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