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1/02, 200호] 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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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02, 200호] 어디쯤 가고 있을까
  • 수중세계
  • 승인 2022.03.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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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자연다큐멘터리 촬영감독 김동식의 촬영일기 71

 

위)특전사 UDT 선후배와 함께 / 아래)산악전문팀
위)특전사 UDT 선후배와 함께 / 아래)산악전문팀

 :: :: :: 2022년을 맞이하면서 필자의 수중 인생도 어언 40년 세월이 되었다. 이쯤에서 나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뒤돌아보려고 한다. 70년대 통기타 가수계의 신데렐라인 전영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라는 노래가 생각나지만 각설하고, 오늘은 초심의 마음으로 40년 전 그날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1982년 필자는 늦은 나이에 특수전사령부에 입대하였다. 83년 해상척후조(SCUBA Diving) 10기로 입교하였는데 훈련기간 동안 오리발로 하루에 1,000대를 오전, 오후로 나누어 맞은 적이 있다. 맞은 이유는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이전 300대를 맞아본 이후로 살면서 처음으로 내 몸을 포기했다. 포기를 하고 나니 맞아도 맞는 것 같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지옥주 훈련기간에는 열사병으로 기절까지 했었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내어 수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UDT 교육을 나온 선후배들과 해상 침투팀에서 열심히 잠수를 했다. 이것이 수중촬영감독이 라는 직업으로 나아가게 된 첫걸음이었다.

스카이 다이빙
스카이 다이빙

군 생활을 하면서 간혹 나 자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나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러다가 나 자신을 테스트하고 싶어서 특수전전문(Ranger) 17기로 지원해 입교했다. 이 교육은 인간병기를 만드는 것을 주목적이다. 교육 마지막 1주일은 신문(고문)교육이었는데 잘 버텨내 전기고문 단계까지 갔었다. 이전 단계에서는 아무리 주리를 틀어도 그 고통을 참을 수 있었는데 전기고문은 차원이 달랐다. 얼마나 아프던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했다. 엄청나게 비명을 질러대면서 버티고 버티다가 잠 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냥 다 포기해버리고 싶던 순간, 그래 어디까지가 내 한계인지 보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버텼다. 그 결과, 끝까지 남은 교육생 두명 중 필자는 한 명이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인간의 한계점이 어디까지인지를 알게 되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을 배웠다. 그 후 지금까지도 전기 쪽과는 친하지 않다. 이후 두 기수 만에 고문 교육은 아주 약하게 맛만 보는 정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렇게 군 생활을 잘하다가 필자는 또다시 이상한 병이 도졌는지 또 장기복무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고공(SKY Diving)교육 35기로 입교하였는데 생명줄 강하 때 불안전한 자세로 인해 퇴교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동기생 교관에게 애걸복걸 매달렸지만 그는 절대로 나를 합격시킬 수 없다고 했다.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내 성격이 화근이었다. 교관이 말하길, 나에게 합격판정을 내어주면 자유낙하를 하다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싫다며 자대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결국 퇴교 위기 직전까지 가서야 특수훈련 과장에게 신체 포기 맹세를 하고 배꼽(생명줄)을 떼었다. 그렇게 첫 스카이다이빙(자유낙하)을 했다.

 그럼에도 교육생들 중에서 가장 좋은 자세로 점프하여 브리핑 때마다 박수를 받았다. 그 후 더 높은 고도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고 무사히 수료를 했다. 그 후로도 두려움과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고공 마스터(SKY Diving Master) 14기로 입교 및 수료를 하였는데 그때 얻은 소득이라면 두려움의 공포를 잘 극복할 수 있는 배짱을 얻 은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선배들로부터 늘 ‘꼴통’에 ‘독종’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지만 당시 나의 무모한 도전으로 특전사에서 3종목 특수교육을 받은 첫 사례로 남았다. 당시 필자의 별명은 뽀식이 상사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군 생활, 최고의 선물은 강인한 피지컬과 남다른 멘탈이다.

그런 정신은 지금까지도 포기할 줄 모르는 인내심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 수중촬영감독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가장 큰 디딤돌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군 시절에 잠수기능사 2급 자격증과 CMAS 강사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대한민국 독도 동도
대한민국 독도 동도

전역 후 당시 수중촬영감독으로 인기 절정에 있던 고태식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고감독이 UDT에서 전역했기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천에서 다이빙숍을 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어시스턴트로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고 고감독의 소개로 방송촬영 을 시작하게 되었다. 방송촬영으로 입봉은 했지만 아직 실력은 부족했고 부 족함을 오직 성실함으로 메우며 당시 여러 피디들로부터 지도편달을 받았다.

최고의 수중촬영감독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목표를 위해 정상으로 향해 가는 과정에는 늘 고비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환경스페셜 <인공어초, 물고기 아파트인가 수중쓰레기인가> 프로그램을 촬영하던 당시의 일이다. 제주 도에서 난파선 촬영 도중, 깊은 수심에서 촬영을 마치고 충분히 감압정리를 하지 못하고 너무 추운 나머지 안이하 게 하고 올라온 것이다. 장비를 다 챙기고 철수하려는 순간 엉덩이에 미세하게 찌릿찌릿 느낌이 왔다. 바로 다시 장비를 세팅해서 수중에서 감압정지를 하고 나와 해양경찰 선박에 있는 챔버에서 8 시간 치료를 하고 진해해군본부로 가서 챔버 치료를 받았다. 돌이켜보면 겁 없이 날뛰던 필자에게 ‘너 까불다 한 번 에 훅 간다’라고 자연이 주는 메시지였다.

그 후에도 조금 지나치다 싶으면 자연은 내 몸에 경고를 준다. 허리를 아프 게 한다든지, 상처가 난 다리에 벌레가 알을 낳는다든지 하는 경고 말이다. 그 때는 긴급으로 입국해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자연이 나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가 없었다면 나 스스로 발전 하지 못하고 늘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혹등고래
혹등고래
지느러미가 잘린 채 버린 상어
지느러미가 잘린 채 버린 상어

수중촬영중에 생긴 에피소드야 정말 많지만 그중 손에 꼽히는 기억은 독도다. 독도에서 겨울철을 제외하고 이듬해 봄까지 1년간 혼자서 담금질을 한 적이 있다. 필자의 다이빙 횟수가 총 12,000회가 넘는데 지금껏 했던 야간다이빙 횟수보다 독도에서 했던 야간 다이빙 횟수가 훨씬 많다. 특히 새벽 2시부터 4시 사이 독도 바닷속은 정말로 고요하고 적막하다. 생태적으로 촬영할 것도 정말 많았다. 독도에서 지내는 동안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놀이라고는 스쿠버 다이빙뿐이었다. 사람이 너무나 그리웠던 만큼 소중함을 알게 해준 시간이었다. 독도는 필자에게 수많은 것을 내어주고 깨우쳐준 스승이다. 독도 자연다큐멘터리의 끝 판왕은 ‘포항MBC’ <독도 野>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1년간 800회 잠수를 하면서 오로지 열정을 다해 독도 바다를 영상으로 기록한 결과물이기에 독자 여러분께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기회가 되시면 유튜브 검색해서 시청할 수 있으니 꼭 한번 보시길 바란다.

방송 후 MBC로부터 촬영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자연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믿는다. 그래서 10년 도전 끝에 박사학위도 받았다. 난 이렇게 투구를 하나 장만하게 된 셈이다. 나 자신이 결심한 대로 목표로 하는 정상을 향해 가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준비했다.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가 마음먹은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노력 끝에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과 정신적인 강인함으로 무장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사용할 나만의 방패(Red Helium 8K Camera)를 갖추기 위해 당시 장비 구입에만 1억 2천을 투자했다. 그 후 영국 BBC의 “Wild Korea” 다큐멘터리 스태프로 참가하여 수중촬영감독 역할을 맡았다. 세계라는 무대로 향하기 위해서는 보다 튼튼한 갑옷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드디어 2021년, “Fisher Queen” 프로그램으로 Cinematography Awards New York, Asian, European, Canadian에서 Best underwater Photographer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것으로 전 세계 어디에라도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나만의 갑옷 (Director of Underwater Photographer)을 장착한 셈이다. 그리고 금년에 Red Raptor 8K Camera 3대로 연결해 16K 다면영상을 촬영 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무기 진검도 개발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4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필자의 나이 60이 넘어서 이제라도 영상을 제대로 알았으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고 하지만 죽기 전에 필자가 만든 다큐멘 터리가 오스카상을 받는 것이 필자의 최종 목표이자 정상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오늘 만큼은 나 자신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일부터 전 세계를 향해 서 전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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