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1/02, 200호] 수중세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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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02, 200호] 수중세계 박물관
  • 수중세계
  • 승인 2022.03.2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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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씨앗, 그리고 금빛 열매

∷∷∷ 지난 호에 이어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73년으로 여름으로 돌아가 본다. 어린나이에 처음 스쿠버 교육을 받은 후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떨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UDT 군대식 교육에 머릿속에 남은 지식은 과연 다이빙을 무사히 마치고 살아서 나올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앞설 정도로 매우 위험하다는 이론 내용이 전부였다.

예를 들어 ‘잠깐이라도 숨을 참고 상승하면 허파가 터져 죽는다’, ‘한 방울의 피 냄새를 백상어는 1마일 밖에서도 맡을 수 있고, 수면위에서 첨벙거리는 다이버는 공격을 당하기 쉽다’, 하물며 우리나라에는 있지도 않은 ‘바다뱀이나 콘쉘, 맹독성 고깔해파리는 코브라 뱀의 독보다 10배나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물리거나 쏘이면 즉사한다’ 등, 공포심을 일으킬만한 내용으로 가득하였다.

아무튼 호기심이 많은 나이였기에 “왜?” 라는 의문과 과연 어떻게 생긴 생물들이 위험한지 사진으로라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교재가 따로 있지도 않았고 감압병이나 공기색전증 등에 관한 내용은 어렴풋이 전달은 받았지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따라서 물리적 이해는 더욱 깨우치기 힘든 형편이라 어떻게 그런 공포심을 안고도 다이빙을 그만두지 않았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되어 그저 숙명이라고 에둘러 말하곤 한다.

아무튼 선배님들의 오리발만 죽어라 하고 쫓아다니며 숨 쉬는 횟수까지 그대로 따라했었다. 물밖에 나오면 사선에서 살아 돌아온 안도감이 우선 좋았다. 코피는 터지고 머리는 깨지는 듯 아팠지만 무중력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숨을 쉬며 물안경을 통해 본 또 다른 세상이 나를 공상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어 멈출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신세계에 대한 경험을 누군가에게 자랑도 하고 설명도 해주고 싶었지만 지식이 얕아 허풍만 떨 수밖에 없어 답답하였다.

어느날 청계천 중고책방을 뒤지다가 하늘색 표지에 노란 글씨로 "Skin Diving" 이라 쓴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거들떠도 안 보았는지 뽀얗게 먼지 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얼른 집어 들고 살피니 영어 로 쓰인 스쿠버다이빙에 관한 일종의 교과서로 보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머니를 털어 선불을 주고 잡아놓은 후 다음날 책방 문이 열리자마자 잔금을 치루고 손에 넣었다. 엄청난 보물을 손에 쥐어 흥 분되었지만 그 뒤로부터는 책과의 끝없는 씨름이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이었지만 책 한 페이 지를 이해하려면 그야말로 수십 개의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야만 했다. 그래도 궁금했던 내용을 한 가지씩 알아가는 재미는 쏠쏠 하였다.

당시 행여나 책이 손상될까봐 단어의 뜻을 볼펜이 아닌 연필로 깨알같이 옆에 써 놓은 글씨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숨길 수 없는 엄청난 악필의 소유자라는 증명도 함께. 하지만 SCUBA는 물론 특수 잠수 전반에 걸쳐 다룬 교본이었지만 "SKIN SCUBA DIVING"이 아닌 왜 "Skin Diving" 이라고 제목을 달았는지 지금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1)1970년 3쇄 발행으로 적혀 있다. / 2)연필로 깨알 같은 악필로 써놓은 뜻풀이가 선명하다.
1)1970년 3쇄 발행으로 적혀 있다. / 2)연필로 깨알 같은 악필로 써놓은 뜻풀이가 선명하다.

∷∷∷ 책 한권을 통한 지식습득이 두려움의 대상이 었던 스쿠버 다이빙을 이해하고 평생 동안 깊이 빠지 게 만들어 준 기폭제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미국으로 건너가 하고 싶은 교육도 받고 수중사 진에도 심취하게 만들어 뒤이어 소개하는 세계유수의 수중사진 공모전에서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겨주는 영광도 누리게 만들어 주었는지 모르겠다. 세계수중연맹이 주관하고 여러 나라 스쿠버다이빙 전문지 발행인을 포함한 세계 유명작가 50인이 심사하는 공모전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다.

손때 묻 은 푸른 책 한권은 평생의 삶을 설계해준 나의 꿈이 되어주었고, 그리고 금메달은 바다를 향한 열정적 사랑의 결실이라 하겠다. 그래서인지 책에 메모 해놓은 글 씨를 어루만지니 뜨겁게 느껴지고 금메달은 더욱더 무겁게 느껴진다. 아마도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이 힘을 더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연재해온 수중세계 박물관에서 다룬 장비나 서적은 내가 직접 썼던 장비나 이야기가 서려있는 물건들을 소개하였다.

앞으로 기회가 이어지면 일부러 수집하였거나 기증받은 물품도 병행해서 다루도록 하 였으면 한다. 

1997년 제4회 세계 50인 심사 수중사진 공모전 금메달
1997년 제4회 세계 50인 심사 수중사진 공모전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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