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6 190호] 윤혁순, 옹기 어문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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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6 190호] 윤혁순, 옹기 어문 장군
  • 윤혁순
  • 승인 2020.06.1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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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문화박물관
글, 사진 윤혁순 다큐멘터리스트
작품 : 월리스라인의 원시 왕국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 방영, 프랑스 Motion pictour 판매, 요르단 MEM 판매, MBC 스페셜 판매
www.youtube.sea school 운영



옹기는 옹(甕, 瓮)은 ‘독’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어로서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독은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져 음식물을 저장하거나 시신을 넣는 관으로도 사용되어 왔고, 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생활에 더욱 긴요하게 사용되어 고구려의 안악 3호분 고분벽화에 크고 작은 독을 늘어놓은 장면이 있으며, 백제와 신라에서는 쌀이나 술, 기름과 간장, 젓갈 등을 저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옹기는 단순히 그릇의 형태로 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황갈색의 유약을 입힌 질그릇을 총칭하는 개념으로서 독을 비롯하여 소래기·단지·식초병·시루·거름통·약탕기 등 황갈색의 유약(柚藥)을 입힌ㅜ생활용기들을 말하는 것으로, 형태로서의 독과 구분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종실록(1432)에 부수한 지리지(地理誌)에는 옹기를 생산하는 도기소(陶器所)와 제품의 등급에 대하여 기록되어있다. 강원도에는 10개소가 있으며 강릉에는 강릉대도호부: 부청서남쪽기장촌, 우계현남쪽마류사동 두 곳이다. 이제 강릉에는 옹기를 제작하는 곳은 한곳도 없다. 그리고 아파트 생활문화로 변모하면서 옹기를 만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새마을운동이 펼쳐지기 전만해도 장독대는 어느 집이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곳이었고, 장독대에는 크기와 형태, 조금 다른 색상, 곡선들이 어우러지는 우리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이었다. 귀때를 붙인 것을 ‘간장단지’라 부르며, 물을 담아 보관하던 큰 독은 ‘물두멍’, 김장을 할 때 무 배추를 버물리기에 사용하는 변이 넓어진 ‘버레기’, 한해 논농사를 지은 수학물인 벼를 보관하던 ‘낱알단지’, 액체를 담아 옮기는 ‘장군’등 모든 것이 정겨운 우리의 생활 기물이었다.

이런 옹기를 이름의 호로 사용하신 분이 작고하신 김수환 추기경이며, 2002년 김수한 추기경 기념 사업으로 옹기장학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87 명에게 1억8천만 원이 장학금으로 지원된 것으로 알려 진다. 그리고 고 김수한 추기경은 옹기와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조부님을 1868년 무진년 박해때 서울에서 순교하시고 부친이신 김영석은 옹기장수로 생활을 하였다. 우리나라 옹기장인들 대부분이 천주교신자이다. 박해를 패해 산속에서 집단으로 신앙생활하며 생업을 이어가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장인들만이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물고기는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여 은밀한 신앙고백으로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하였던 암호였으며, 이후 십자가와 함께 기독교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옹기어문장군의 물고기는 손가락으로 그린 지두화이며, 제각한 옹기 장인은 천구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장군은 커다란 병 모양의 옹기로 ‘표호(俵壺)’라고 불리기도 한다. 흔히 물이나 술과 같은 것을 운반하는데 사용한 용기이다. 담겨지는 종류에 따라 물장군, 술 장군, 오줌장군, 똥 장군, 간장 장군 등으로 분류된다. 몸통은 원통형이고 몸통 중간이나 윗부분에 외반(外返)된 입구를 달았으며, 세우거나 눕힐 수 있도록 바닥이 마련되어 있다. 갈색도자기 옹기는 우리민족과 뗄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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