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돔굴에서 만난 독도 터줏대감 "영감 혹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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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돔굴에서 만난 독도 터줏대감 "영감 혹돔"
  • 수중세계
  • 승인 2020.11.07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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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명정구(한국해양과학기술원)
매일 혹돔굴 속에서 잠을 자는 혹돔 _ 2020년 6월 촬영
매일 혹돔굴 속에서 잠을 자는 혹돔 _ 2020년 6월 촬영

혹돔은 울릉도, 독도 연안에서 연중 만날 수 있는 대형어종이다. 여름철에는 난류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 방어, 부시리 등 제법 덩치가 큰 어종들이 있지만 대부분 떼를 지어 빠른 속도로 헤엄쳐 다니기 때문에 자세히 관찰 하기가 쉽지 않은 종들이다. 울릉도와 독도 연안에는 몸길이가 70cm 이상 되는 덩치급 혹돔들을 어렵지 만날 수 있지만 대낮에는 깊은 수심 층에서 어슬렁거리기는 해도 다이버가 가까이가려하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멀어지곤 해서 역시 자세히 관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종이다. 일본 니이가타현의 사도섬(북소포)의 다이빙 포인트에서처럼 30년 이상을 사람과 가까이 지낸 혹돔들은 다이버와 입맞춤도 하고 사진 포즈도 취해 주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다이빙 포인트는 없다.

필자가 독도의 혹돔을 가까이에서 만난 것은 1997년 독도 연안 수중생태조사를 처음 시작했었던 5월 밤이었다. 서도 어민 숙소에서 가까운 암초(‘산-73번지’)의 아래에 두 개의 입구를 가진 동굴이 있다는 것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팀 일부 대원들은 야간에 그 굴을 가보기로 했었다. 당시 조사선 탐해호(190톤)는 국내 유일한 다이빙 전문선으로 탐사대원 외에 부산에서 온 몇 명의 일반인들도 타고 있었다. 혹돔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 누가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들로 탐사대원 몇 명만 조용히 야간 조사하는 것 처럼 다녀왔었다. 수심 10m 정도에 서쪽에서 들어갈 수 있는 둥근 자갈이 깔린 넓적한 입구를 찾아 굴속으로 들어가면 오른 쪽 천정 쪽에 크고 작은 바위 틈(크랙)들이 몇 군데 있다. 밤에 되면 덩치급 혹돔들이 휴식을 위하여 들어온다고 하는데, 그 날 천정 쪽의 틈에 2마리, 가장 안쪽 좁아지는 맨 끝 바위틈에 한 마리, 총 4마리 를 만날 수 있었다. 필자는 당시 카메라 없이 메모리 판만 갖고 다녔기 때문에 굴의 생김새, 혹돔 은신처의 생김새를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고 나머지 느낌은 가슴에 새겼다. 50-80cm 정도 되는 혹돔은 은신처에서나마 랜턴으로 비추면서 한참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물고기를 공부하는 필자에게는 큰 기억으로 남았다.
독도에서 학술적인 궁금증으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혹돔과의 인연은 그리 시작되었다.

 

사진 이선명
사진 이선명

 

그 후로 이번 2020년 6월 15일 혹돔굴 방문까지는 꽤 긴 세월이 흘렀다. 독도 수중을 방문할 수 있는 연구 사업은 90년대부터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독도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탐사를 갈 때 마다 독도 수중세계는 점점 그 가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또, 최근에는 환경 변화로 인한 수중경관의 모습도 여러차례 바뀌고 있었다.

2008년 *월, 몇 년간 다른 곳의 일로 독도를 가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찾았던 혹돔굴에서 야간에 혹돔을 다시 만났을 때에는 헤어졌던 옛 친구를 만났던 것처럼 반가웠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가 몇 장의 사진을 남기도 아쉽게 돌아 나온 기억이 남아있다. 그 후 매년 독도 탐사를 이어오고 있으면서 날씨가 허락하면 야간 혹돔굴 방문은 늘 이루어졌다. 난류를 따라 독도 연안으로 온 작은 크기의 열대, 아열대어종들을 야간에 굴속에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고수온기 조사 시에는 필수 탐사정점이기도 하였다.

혹돔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놀래기 종류이다. 어업인들이나 낚시꾼들에게도 그리 큰 인기가 없는 종이기도 하다. 이름만 ‘돔’이지 놀래기과(Labridae)에 속하고 횟감으로도 여러 종류의 돔 같지 않아서 저급 어종으로 취급한다. 돌돔을 노리던 낚시꾼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손님고기이고 횟감을 잡는 어업인들에게도 그다지 돈이 되지 않는 잡어 정도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먹거리로 그리 인기가 없지만 혹돔의 덩치, 사과 만하게 튀어나온 이마와 아래턱의 혹, 낚싯대를 차고 바다로 나가는 힘과 소라를 깨부수는 커다란 송곳니의 강한 인상 등은 수중세계를 들여다보는 다이버들에게는 한번쯤 가까이해 보고 싶은 종이다. 혹돔을 만날 기회는 우리나라 남해의 외곽도서들, 제주도, 동해의 울릉도, 독도가 가장 확률이 높은 곳들이다. 거의 1m에 이르는 커다란 혹돔을 바다 속에서 만나는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다. 마치 열대바다에서 사촌격인 거대한 나폴레옹피시를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바다, 특히 물이 맑은 독도바다에 혹돔과 같은 거대한 놀래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독도의 혹돔굴은 가치는 크다고 생각된다.

혹돔굴 얘기로 돌아가 보자. 19997년에 시작된 독도 연안생태 연구는 생물다양성, 인벤토리사업,모니터링 등 유사한 연구주제들이 이어지면서 90년대 후반부터 올해까지 이어졌다. 필자는 올 12월에 정년을 앞두고 있어서 어쩌면 정식 연구원으로서는 독도탐사도 올해가 마지막이 되었고 그나마 독도에 하루 머물면서 야간에 독도 바다 속을 연구하는 활동도 이번(6월 탐사)이 마지막이될 것 같아서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 6월 15일 낮에 해녀바위와 똥여(서도에서 울릉도 쪽으로 떨어진 암초, 필자가 부친 이름)를 탐사한 대원들의 의견을 따라 야간에는 혹돔굴을 가보기로 하였다. 필자는 어쩌면 마지막 방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혹돔굴에서 휴식 중인혹돔과 인사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산이었다. 유달리 투명도가 높은 이번 독도 연안의 환경을 감안할 때 따뜻한 물이 와 있다는 생각에 설렘은 더했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는 사람 없이 언제나처럼 야간 다이빙은 조용히 시작되었다.

다이빙 전용선인 아일랜드호가 뒷 꽁무니를 ‘산 73번지’ 암초 앞쪽으로 틀었다. 늘 알고 있는 위치였지만 어떤 해는 잘못 떨어져서 입구를 찾지 못하고 주위만 빙빙 돌다가 복귀한 기억도 있다. 필자와 필자버디(이영욱)가 가장 먼저 입수를 하고 혹돔굴 좌좌측 직벽을 확인 후 왼쪽 어깨에 대고 바로 동쪽으로 비스듬히 내려가자 낯익은 혹돔굴 입구가 나타났다. 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정의 크랙 안을 보니 25cm 이상 되는 볼락 뒤로 벌건 몸체가 보인다. 입구 쪽으로 머리를 둔 첫 번째 혹돔이 뒤에 있었다. 아직 잠이 들지는 않은 듯 이리저리 눈을 굴리면서 경계하는 눈치였다.

하우징이 큰 수중카메라는 혹돔굴의 혹돔을 찍기가 쉽지 않다. 천정 쪽에 있는 크랙이면서 공간이 그리 크지 않아서 작은 카메라를 들이밀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호흡할 때마다 공기방울들이 굴의 천정으로 올라가면서 혹돔에게도 공기 방울 샤워를 시킨다. 만약 혹돔이 귀찮아해서 튀어나온다면 조심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초저녁에 혹돔굴을 방문하면 항상 혹돔의 돌출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일단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면 사람은 피한다 해도 커메라 하우징 유리가 깨어지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다행히 지난 20여 년간 크랙에서 갑자기 정면으로 튀어나온 혹돔은 없었다.)

이날 크랙에서 튀어나온 놈은 30cm정도 되는 돌돔(뺀찌)이었다. 이날 천정 쪽에서 총 5마리의
혹돔이 확인되고 반대편 굴의 바닥 구석에 엉성한 자세로 피해있던 50cm 급 혹돔을 합치면 총 6마리를 만났다.(필자가 본 것은 5마리였다.)
혹돔굴의 길이는 대략 24m 정도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위쪽으로 나가는 굴뚝같은 통로가 하나 더 있다. 이날 가장 큰 혹돔은 통로 왼쪽 천정의 크랙 속에 있었다. 굴의 맨 안쪽 끝에서 30cm 급 돌돔 몇 마리와 25cm 전후의 볼락무리를 사진기에 담고 돌아 나오려는데 필자 버디인 이선생이 랜턴으로 위쪽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이빨만 눈에 들어왔다. ‘와!.. 큰 놈이다’ 물속에서는 크게 보이는 것을 감안해도 아마 80cm는 넘을 것 같은 ‘미터급’ 혹돔 수컷이었다. 언젠가 필자를 만났었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이 혹돔은 앞서 만난 놈보다 덜 경계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23년간 혹돔굴을 드나들면서 만났던 혹돔들은 일부는 늙어서 사라졌고 일부는 이제 어른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혹돔의 수명이 30년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필자를 기억하는 혹돔도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수중카메라로 여러 장을 찍었다. 필자에게는 오래 기억하고픈 독도의 마지막 야간 다이빙의 하이라이트였는지도 모른다.(이 혹돔은 탐사를 마치고 부산에 있는 연구실에 돌아와, 다시 사진을 보면서 그날 밤의 감정을 넣어서 가리비 껍질에 그림으로 남겼다.)

지난  탐사 기록 중에는 혹돔수가 4마리에서 1마리, 중간에 한번은 혹돔이 없었던 적도 있었지만 늘 야간에 혹돔굴을 들어가면 크고 작은 혹돔들을 만날 수 이었다. 정식 이름도 없이 탐사 대원들까지 ‘혹돔굴’이라 불렀던 독도 ‘산 73번지’ 암초 아래의 굴 탐사 기록 중 이번이 혹돔 6마리와 가장 인상 깊은 대형 혹돔을 마주 보면서 독도 수중 터줏대감인 ‘영감 혹돔’과의 침묵의 교감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독도의 연구 자료로서 뿐만 아니라 필자의 지난 20여 년간의 독도 수중탐사 과정에서 싹튼 혹돔과의 우정(?)의 마침표 같은 밤이었다.

 

사진 이선명
사진 이선명

 

혹돔의 생태
- 학명: Semicossyphus reticulatus
- 외국명: Bulgyhead wrasse(영), コブダイ(Kobudai)(일), 金黃突額隆頭魚(중)
- 어릴 때는 몸 중앙에 흰색 세로띠와 등, 뒷지느러미의 검은 반점이 특징이지만 성장하면서 없어진다. 노성어가 되면서 수컷의 윗머리가 둥근 혹처럼 불룩하게 튀어나고 아래턱도 크게 부풀어 오른다. 암컷은 혹과 아래턱이 그리 튀어나오지 않는다. 양 턱에는 굵고 강한 송곳니가 듬성듬성 발달하여 소라, 고둥 등 단단한 먹이를 부수어 먹는다. 낮에 활동하다가 밤이면 바위틈이나 굴속에서 잠을 잔다.
성 전환을 한다. 수컷은 자신의 세력권을 형상하고 텃세를 한다. 알에서 태어난 후 1년이면 10~15cm, 5년이면 25~35cm, 10년 후는 40~55cm정도로 자란다. 최대 1m까지 성장하며, 30년 이상 산다. 우리나라 남해, 제주도 해역, 울릉도, 독도 연안, 일본 남부, 중국 남부의 온대, 아열대 해역의 암반지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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