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으로 보는 바다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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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끝으로 보는 바다 세상
  • 수중세계
  • 승인 2021.01.0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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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기원 _ 시각장애 1급


∷∷∷ 강릉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인공지능 스피커에서 나오는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였다. 오전엔 흐리지만 점차 날이 갬에 따라 어제보다 따뜻한 맑은 오후가 예상 된다는 소식에 마음 한편에 불안감도 함께 걷혔다. 며칠 전부터 매일 일기 예보를 확인했던 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오늘은 바로 우리 경기 안마 수련원 47기 교육생들과 함께 스킨스쿠버 체험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기 안마 수련원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양성하는 2년 과정의 직업재활 교육기관으로 학생과 교사 모두가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되어있다. 대다수의 우리 학생들은 비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사고 또는 질병 등의 이유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후천 시각장애인들이며, 준비 없이 마주해버린 장애에 굴하지 않고 다시 세상 속에서 일을 하며 살기 위해 2년 과정의 안마 교육을 참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예비 안마사들이다.

2020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19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만을 오가며, 현장 학습이나 소풍 등 야외 활동은 일절 제한되었었다. 그러던 중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하향 조정됨에 따라 10월이 마무리 되는 지금에서야 수업과 코로나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첫 야외 활동을 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첫 야외 체험 활동은 스킨스쿠버가 되었다. 올해로 벌써 3년째인 우리 경기 안마 수련원 시각장애인들과 스킨스쿠버와의 만남은 '대한잠수협회'의 노력으로 시작 될 수 있었다. '대한잠수협회'는 장애인들에게도 스킨 스쿠버를 체험 할 수 있게 하는 사업 계획서를 행정 안전부에 제안하였고, 채택되어 지원받은 예산으로 5년 째 시각, 청각, 지체 등의 다양한 장애인들에게 바닷속 체험을 확대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경기 안마 수련원이 있는 수원 인계동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속초시에 도착. 대한 잠수 협회에서 예약 해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인상적인 맛의 두부요리와 맛깔스런 반찬들로 든든히 먹고 목적지인 속초 동명항 부근의 바다로 갔다. 차에서 내리자 우리를 처음 반긴 것은 바다내음이 살랑대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있으려니 코로나19로 그간 가슴속에 켜켜이 묵은 답답함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스킨 스쿠버를 체험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잠수복 착용이었다. 잠수복이 고무재질이란 이야기만 듣고, 예상했던 잠수복의 촉감은 고무장갑이나 고무장화의 질감으로 완전 방수의 것을 예상했었는데 막상 만져보니 신축성이 아주 강력하면서 조밀한 스펀지 옷 같았다. 왠지 물이 잘 스밀 것만 같아서 너무 춥지는 않을지 생각했지만 물에 들어가서는 춥다는 생각이 들 정신이 없었는지 오히려 차갑기보단 온기가 있었던 것같고 포근했던 느낌이다. 후일에 들은 이야기로 처음 스킨스쿠버를 하는 사람들은 긴장해서 춥다는 생각은 원래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는데 나야말로 생전 처음해본 스킨 스쿠버에 전혀 춥지 않았던 걸 보면 꽤나 긴장 했었나보다.

 


잠수복을 입을 때에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착용 직후 몸이 조이면서 관절이 뻣뻣한 로봇처럼 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영상이라도 찍히면 쫄쫄이에 로봇걸음 조합이 인생의 흑역사 한 페이지가 될까 라며 실없는 걱정도 잠깐하면서 잠수복에 적응해 나갔다. 잠수복을 입고 가볍게 단체 촬영 그리고 이어지는 장비의 설명과 사용법, 그리고 이퀄라이징과 수중 사인 등의 기초 교육을 받았다. 기초 교육을 받을 때에는 체험자와 강사님이 1:1로 설명해 주셨고 친절하게 장비와 사인들을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지도 해주시는 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잘 준비된 맞춤형 교육임을 알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기초 교육이 끝나고 해변에 도착하였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잠수모와 마스크를 점검 후 지시에 따라 물로 몇 발자국 들어가니 입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납 벨트를 채워주고 다시 몇 발 더 들어가 바위에 기대어 공기탱크를 매어 주셨다. 그리고 전문 잠수사님과 1:1로 본격적인 스킨 스쿠버에 돌입하였다. 호흡기를 입에 물고 조금씩 깊어지는 바다로 들어가려니 어느 순간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서 맥주병인 나는 가슴이 점점 답답해져갔다. 동행 잠수사님께서 이제 입수해도 되겠냐고 물으시는데 알겠다고 사인을 보내고 눈을 감았다.

 


물이 너무 차지는 않을까 하던 염려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왠지 롤러코스터 꼭대기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순간처럼 속은 울렁거리는 것 이었다. 바다로 머리가 들어가자 공기방울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고 말았다. 나의 첫 입수는 창피하게도 몇 초나 되었을지... 수면위로 올라와서 스스로 부끄럽고 오기가 발동해서는 바로 재도전해 들어갔다.

두 번째 입수는 두려움보다 이번엔 잘하고 말겠다는 오기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어갔는데 조금 들어가니 귀가 먹먹해지면서 기초교육에서 배웠던 귀에 수압 평형을 맞춰보려고 코를 막고 힘껏 불었지만, 마스크에서 공기방울만 크게 뿜어지고 귀가 먹먹한 것은 그대로였다. 눈도 안 보이는데 귀까지 먹먹해지니 또 다시 두려운 생각이 들려 할 때, 내 손을 잡은 강사님의 괜찮냐는 사인에 정신 차리고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코를 잘 잡고 수압 평형을 맞추기를 시도하여 성공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괜찮냐는 사인에 나도 모르게 괜찮아 괜찮아 하고 두 번 사인을 주는 바람에 또 다시 수면 위로 직행하고 말았다. 두 번째 입수에서는 입수를 잘하고 오래 견디고 싶었는데 맘처럼 못하고 올라오자 이번엔 실수 없이 제대로 스킨스쿠버를 하고 오겠다. 속으로 다짐하면서 세 번째 입수에 도전하게 되었다.

 


세 번째 입수는 이퀄라이징과 수중 사인에 집중하면서 단계적으로 내려갔다. 이퀄라이징도 몇 차례 반복하면서 내려와 바닥에 닿아 바위도 만져 보았다. 물속에 잇는 바위는 파도에 연마되어 반질반질 할 줄 알았는데 울퉁불퉁한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내 호흡 소리에 귀 기울여지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던 중 ‘올라갈까요?’ 라는 사인에 아쉬움을 남기고 물 위로 올라왔다. 물 밖으로 나와서 햇살에 따뜻해진 바위에 걸터앉아 좀 전의 체험을 돌이켜보았다. 두려움과 당황 때문에 물위로 몇 번이나 올라와 더욱 짧게만 느껴지는 바닷속 체험이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웠다. 무엇보다 물속에서 잠시나마 느꼈던 편안함, 더 머무르고 싶었던 그 무언가가 "한 번 더 하고 싶습니다.“ 라고 외치게 했다. 다행히도 바로 승낙이 떨어졌고 다시 한 번 스킨스쿠버를 체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불가사리를 잡아 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제야 바닷바람과 추위가 느껴졌다.

그리고 기다렸던 두 번째 스킨스쿠버 체험.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납 벨트와 공기통을 매고 새로운 강사님과 1:1 동행 입수를 했다. 바다 속에 들어와 강사님의 인도에 따라 조금씩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몇 차례 바닥에 닿으면서 이동과 하강을 반복하였다. 이동을 하기 위함인지 몸을 바닥과 수평이 되게 하고 앞으로 손을 뻗은 채로 이끌어 주셨는데 물속임에도 마치 하늘을 날아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무중력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팔다리를 움직이고 내 몽의 무게마저 잊어 버렸을 때, 세상의 그 어떤 근심도 잊은 완전한 자유의 새로운 경험이 잊지 못할 감동을 주었다.

바닷속 체험은 계속 되었고 조금 더 내려가 바위를 만져 주시고는 그 위에 어딘가로 내 손을 올려 주셨다. 처음에는 그냥 바위인가 했는데 무언가 바위가 옆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이상한 기분에 다시 자세히 만져보니 오각형 모양의 바위 껍질 같은 것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불가사리였다. 불가사리를 들고는 바닥 쪽으로 조심히 손을 대어 보았다. 예전 어릴 적 시력이 좋았을 때, 불가사리가 조개를 덮쳐잡아 먹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불가사리 아래는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대었다. 손에 살짝 붙는 느낌이 왔을 뿐 위험하지 않았다. 몇 군데 바위를 만져가며 불가사리 세 마리를 잡아 한손에 겹쳐 들고는 또 다른 손으로 작은 소라까지 가지고 육지까지 올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무언가를 살짝 만졌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성게였다. 불가사리는 오각형, 별모양이 있었고, 소라는 원뿔 모양 이였다. 그리고 성게는 뾰족해서 더는 만질 수 없었지만 가시 긴 밤송이처럼 생겼다고 설명해 주셨다. 특히 불가사리의 나무껍질같이 얇고 딱딱한 질감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손을 뻗으면 손에 만져 질 것만 같이 생생하다.

 


바닷속 체험이 끝나고 물가로 올라오니 추위가 매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킨 스쿠버 체험을 위해 전후로 오가던 길에 생각지 못한 장애물을 만났는데 그것은 울쑥불쑥한 바위들로 가득한 바다로 가는 길이었다. 눈으로 보고 걸으면 별것 아닐 텐데 바위와 바위 사이의 간격이나 높이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어 발로 재차 더듬어 가며 앞에서 인도해 주시는 강사님의 안내로 조심히 걸음을 떼었다. 조금씩 전진하다가 거리를 잘못제고 발을 내밀어 바위 사이로 한쪽 다리가 쑥하고 빠졌다.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깊이라야 허벅지 아랫부분까지 떨어졌지만 눈을 감고 떨어지는 그 기분은 지금도 섬뜩하다. 다행히 바닥이 평평했고 돌에 쓸리지 않아 다치지는 않았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은 비포장 산길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길에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다면 그 뿌리에 걸리기 쉽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돌이 많은 길인데 돌들의 높이, 지면과 각기 다른 각도로 눕기도 서기도 한 돌들, 그리고 디디면 움직이거나 넘어가는 돌들은 부상의 위험은 물론 걸음마다 무게 중심을 뒤로 하고 더듬어 걷게 하여 이동을 몇 배로 지치게 하곤 한다. 하지만 소수의 시각장애인들은 산악 활동을 취미와 여가로 즐기고 있다. 산행을 즐기는 시각장애인 지인이 언젠가 내게 했던 이야기를 옮기자면, “처음엔 인도를 걷는 것보다 신경도 많이 쓰이고 분명 힘이 든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나 더 험난한 길도 모두 길일뿐이다. 시각장애인이라서 산길 오르기를 포기 한다는 것은 그 길이 안내하는 기회도 미리 포기해 버리는 것” 이라던 음성이 오랜 기억에서 떠올랐다. 만약 바다를 가는 돌길에서 돌아섰거나, 3~4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힘들어서, 또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 포기했더라면 오늘 느꼈던 자유로움과 감동 그리고 바닷속 생명의 신비를 경험 할 기회가 다시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일상에 지쳤다고, 그 일은 장애 때문에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이래서 저래서 자연스레 붙이는 핑계로 많은 가능성들이 시작도 못해본 채, 사라졌을 생각을 하니 씁쓸함이 남는다. 핑계 꾼이 되어버린 요즘의 내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

 


단 하루의 스킨 스쿠버 체험 이었지만 기존을 고수하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던 내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제 스킨 스쿠버에 첫 걸음을 내딛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시각장애인에 맞는 스쿠버 자격증이 개설 된다면 자격시험에 도전해 보고 싶다. 그리고 대한민국 1번 시각장애인 잠수인이 되고 싶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의미를 스쿠버 자격증으로 간직하고 싶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체험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대한 잠수 협회 홍성훈 사무국장님과 사무원님 그리고 한명, 한명 지도해 주신 강사님들, 서포터 여러분 그리고 이번 프로그램을 후원해 주신 행정안전부와 우리 수련원과 대한잠수협회에 다리를 놓아 주신 한국 시각장애인 스포츠연맹 강호용 수석 부회장님, 마지막으로 우리 경기 안마 수련원장님 이신 최의호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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