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Box]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여인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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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Box]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여인의 미소
  • 이선명 발행인
  • 승인 2021.01.30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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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10일 쿠바의 바닷속을
환하게 밝힌 아름다운 미소

글, 사진 이선명

 내게는 스쿠버다이빙 입문 후 지금까지 변치 않는 두 명의 영웅이 있다. 스쿠버 다이빙의 Jacques-Y ve Cousteau와 프리다이빙으로 세계 최초로 100M에 도달 한 Jacques Mayol이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수중세상을 흠모의 대상으로 삼는 다이버라면 마찬가지라 본다. 영광스럽게도 두 영웅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었으며 특히 자크 마욜은 그의 제자라 할 수 있는 Francisco "Pipin" Ferreras와 함께 쿠바와 이태리 등에서 열린 행사의 일원으로 여러 번이나 같은 숙소에서 지내며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영웅들과 마주했음에도 돼먹지 않은 치기였는지, 아니면 숫기가 없어서 인지는 몰라도 변변한 증명사진 하나 찍을 기회를 스스로 외면한 일을 뒤늦게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

CMAS가 주최한 세계수중촬영대회에 우리나라 대표 선수로 나갈 수 있었기에 함께하는 행운이 따라 주었다. 1992년, 당시 기억으로 쿠바라는 나라는 수교는 물론 적성국가로 분류되어 쉽게 갈 수 없는 나라였다. 그래도 수중사진대회를 스포츠 교류로 인정받아 외무부(지금의 외교통상부)로부터 적성국가 방문 허가를 득하고, 다시 일본 오사카 소재 쿠바 영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 어렵사리 갈 수 있었다. 그나마 미국도 우리나라와 처지가 같아 바로 들어갈 수 없어 일본, 미국, 멕시코를 거쳐 쿠바의 Havana로 입국하여 하루를 머물고 최종 목적지인 Juventud 섬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나올 때는 자메이카로 돌아 나와 내친김에 꿈에 그리던 카리브 해에서의 다이빙을 두루두루 해볼 수 있었다.

수중환경에 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다시 하기로 하고, 우선 기억나는 것은 생전 처음 베드버그라 불리는 빈대에 하룻밤 사이 수백 군데 물리는 고초를 겪은 것과 자크 마욜, 피핀을 비롯한 정말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기라성 같은 살아있는 전설들과의 만남이었다. 특히 자크 마욜은 엄청난 흥행에 성공한 “그랑 블루”라는 영화의 실존 인물로서 더욱 유명세를 떨칠 때라 그야말로 할리우드 스타급 인기를 구가 하고 있었다.

Jacques Mayol과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
Jacques Mayol과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

 

좌로부터 당시 대한수중협회 박호종 회장, Pipin, 필자
좌로부터 당시 대한수중협회 박호종 회장, Pipin, 필자

 

쿠바 대회장에서의 Francisco Pipin Ferreras
쿠바 대회장에서의 Francisco Pipin Ferreras

 

반면에 식사를 같이하며 나눈 대화중에 그랑 블루 영화를 감독한 뤽 베송(Luc Besson)에 대한 불만을 많이 토로했었다. 아마도 경쟁자였던 엔죠 마이오르카(Enzo Maiorca)와는 경쟁에서 일찌감치 앞서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등하게 표현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큐멘터리와 영화와의 차이에서 오는 섭섭함이 배경 같았다. 그래도 쿠스토와 에밀 가냥 같이 항상 자크 마욜의 그늘에 가려 평생 2인자라는 굴레에 벗어날 수 없었지만 1988년 57세라는 나이로 끝내는 101M까지 도달하는 기록을 세우고 은퇴한 엔죠 마이오르카의 굳은 의지 하나만은 자크 마욜보다 더 높이 평가할 수 있겠다. 틈틈이 두 영웅은 우리나라 해녀에 관해서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짧은 지식이나마 열심히 설명해 줬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스쿠버 다이버가 된 후 알게 된 사실로 보일의 법칙을 토대로 인간은 프리다이빙으로 수심 40m 이상 잠수하면 폐가 쪼그라들어 폐조직이 심하게 손상된다는 의학계 정설을 이 두 명의 영웅이 과감히 깨버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후 후배나 제자들에게 보일의 법칙이나 스킨다이빙 시 얕은 물에서의 까무러치기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들려주고 있을 정도이다.

쿠바에서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영화 속 장면에 실제로 들어와 있는 듯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여인의 미소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회 일정표에 축하 이벤트로 쿠바 출신 여성 프리다이버인 Deborah Andollo가 프리다이빙으로 60m에 도전한다는 내용이 있어 매우 기대가 되었다. 틈틈이 Pipin과 훈련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한 번은 대회 준비 촬영을 위해 수심 10m를 넘는 지역을 피사체를 찾아 바삐 돌아다니던 중에 모래바닥에 맨몸으로 조용히 엎드려 숨참기를 하고 있는 Pipin과 이를 지켜보는 Deborah를 만날 수 있었다. 혹시 방해가 될까 촬영을 멈추고 바라만 보다가 자리를 떠나 주변 경관을 촬영하면서 힐끔힐끔 확인을 해보니 Pipin 만 꼼짝을 않고 있었다.

다시 커다란 바위를 돌아 꽤 긴 시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니 아직도 그 자리에서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10분 정도를 버티고 있었던 같았다. 아무튼 상승하는 모습도 못 보고 뒤돌아서면서 피핀 정도면 어지간한 잠수는 공기통도 필요 없겠다는 생각으로 엄청 부러워했던 기억과 왜 이런 모습의 수중사진을 한 장도 못 찍은 또 다른 후회도 함께 교차하였다.

프리다이빙 60m 성공 후 수중촬영대회 폐막식에서의 Deborah Andollo
프리다이빙 60m 성공 후 수중촬영대회 폐막식에서의 Deborah Andollo


날씨가 아주 쾌청했던 1992년 11월 10일 스트로브도 없이 니코노스 카메라에 광각렌즈만 장착하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스킨장비만 착용하고 물이 맑아 시커멓게 보이는 바다로 뛰어드니 하얀 밧줄이 끝을 알 수 없는 심해로 꼿꼿한 장대같이 박혀있었다. 무한하게 느껴지는 푸름의 무대를 치장이라도 하듯 빛내림은 조명이 되고 공기방울은 현란한 무희가 되어 찬란한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드디어 세계적 수중세상 무대의 프리마돈나에 도전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몇 번의 리허설이라 할 수 있는 몸 풀기도 스타답게 30m 수심을 가볍게 넘나들더니 잔잔한 수면에 떠있는 출발 대에 의지한 채 마치 잠든 듯 너무나 편안한 표정으로 호흡을 가다듬는다.

Deborah Andollo가 프리다이빙 60m 기록 도전을 위한 준비 잠수 모습
Deborah Andollo가 프리다이빙 60m 기록 도전을 위한 준비 잠수 모습

 

아주 조심스럽게 집게로 코를 막은 후 우아한 동작으로 아름다운 인어가 되어 하얀 선의 끝점을 향해 내려간다. 점점 작아지더니 흰점을 지나 또 다른 푸른 점이 되어 조용히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도 함께 숨을 멈추고 있었는지 정말 1분 1초가 억겁의 세월같이 느껴졌다. 불안감으로 심장이 요동칠 정도로 상식을 뛰어넘는 시간이 지나, 문득 사고가 났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니 검은 심해에서 다시 밝게 빛나는 흰점으로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며 바다의 여왕을 영접하기 위해 군중을 뚫고 좀 더 가깝게 다가갔다. 그 순간 해냄의 기쁨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미소를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보게 되었다. 무작정 셔터를 누르고 필름을 감는 순간 수면으로 솟구쳐 오르는 영웅의 모습으로 장면이 바뀌어 버렸다. 또 다른 역사의 현장에, 그리고 전설로 내려갈 이야기의 증인으로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냐는 생각에 가슴이 터지는 거 같았다.

현상된 필름을 확인 후 지금까지, 단 한 장의 사진이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남아 있으며 꺼내볼 때마다 온 바다를 환하게 바꿔버린 미소는 물론 많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순식간에 사로잡아버린 알 수 없는 여인의 향기까지 느껴진다.

1992년 11월 10일 쿠바의 바닷속을 환하게 밝힌 아름다운 미소
1992년 11월 10일 쿠바의 바닷속을 환하게 밝힌 아름다운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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