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10 192호] 윤혁순, 도포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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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10 192호] 윤혁순, 도포걸이
  • 수중세게
  • 승인 2020.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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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문화박물관
글, 사진 윤혁순 다큐멘터리스트
작품 : 월리스라인의 원시 왕국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 방영, 프랑스 Motion pictour 판매, 요르단 MEM 판매, MBC 스페셜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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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기 이후 많이 착용하였으며, 관리들도 관청에 나아갈 때를 제외하고 사사로이 외출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착용하였다. 도포의 기원에 대하여 ≪성호사설≫과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도교나 불교에서 나온 것으로, 원래는 승려의 권투圈套로 우리나라의 승복인 장삼과 동일하고 명칭으로 보아서도 도복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또 ≪남당초고 南塘草稿≫에서는 관복인 직령공복을 일상복으로 할 수 없어 그것을 본떠 약간 변경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도포가 승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이들의 형태가 곧은 깃이기 때문에 생긴 이론인 듯하고, 직령 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타당하다. 즉 고구려의 포가 고려의 백저포가 되었고, 백저포는 명나라 제도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직령포가 되었으며, 직령포는 다시 도포로 변하였다고 할 수 있다. 도포 착용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선조실록≫에 이홍망李弘望이 초록 겹 도포를 입었다는 것이다. 또 ≪효종실록≫에는 도포를 입는 제도를 임진왜란 이후부터라고 하였으므로 도포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부터 착용된 포라고 할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정조 때에 이르러는 관리들과 일반 선비들의 평상시 겉옷이 된 것 외에, 유생들의 공복(公服)이나 제복(祭服)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강릉지방에서는 삼베로 제작한 도포를 결혼식 때에 조상님들에게 제를 올릴 때 처음 입으며 도포는 반듯이 처가에서 혼수품으로 예물에 포함된다. 그리고 제사, 전사 때 사용하며 사망을 하면 수의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는 도포의 색은 청색·백색의 두 가지가 있는데 경사로운 일에는 청색, 일상 시 에는 백색을 착용하였다. 여기서 청색은 실제로는 옥색을 나타낸다. 그러나 선조 때에는 초록색, 고종 때 영친왕 관례 시에는 남색 도포를 착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허리에는 세조대細絛帶를 매었는데 계급을 구별하여 문관 당상관은 훈색纁色 또는 자색紫色을 사용하였다. 당하관은 청색 또는 녹색을 사용하였으며, 그 사이에는 수많은 색이 있어 제도를 떠나 자유로이 선택하였다. 상喪을 당하면 누구나 다 흰색 세조대를 매었으며, 또한 동다회(童多繪 : 납작띠)를 매기도 하였다. 계급이 높을수록 도색桃色·홍색紅色을 착용하였다.

 

도포에 따르는 관모는 일반 외출 시에는 흑립黑笠을 착용하였으나 사방관四方冠·동파관東坡冠·유건儒巾도 착용하였다. 도포에 따르는 신발은 사대부 양반계급의 나이가 든 사람은 태사혜(太史鞋)를 신었다. 유생들은 흑혜黑鞋·운혜雲鞋·마혜麻鞋 등을 신거나 분투혜分套鞋를 신었다. 도포는 조선 말기 1884년(고종 21)의 의복제도 변경 때에 다른 소매 넓은 의복과 함께 폐지되었으며 두루마기로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넓은 소매 속에 넣어 사용한 조그만 벼루를 도포 벼루라고 한다.


도포걸이는 도포를 걸어두었던 지금의 옷걸이인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오죽, 박달나무. 가죽나무 등으로 제작하였다. 박달나무로 제작된 도포걸이는 잘라서 마르기 전에 모양을 제작해야 한다. 너무나 단단해서 단목으로도 불리며 주로 다듬이, 홍두깨. 방방이, 제작되어서 사용하였으며 완전히 건조 되면 단단하고 매우 무겁다. 도포걸이 양쪽 끝에는 양면에 한 마리씩 수염이 난 메기를 음각으로 새겨다. 메기는 과거급제를 의미한다. 점어상죽鮎魚上竹이라는 말
은 『귀전록歸田錄』이라는 책 속에, 중국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인 매요신(梅堯臣, 자字는 성유聖兪)이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조씨(조氏)와의 대화 속에 나오는 말이다. 매성유梅聖兪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책을 읽고 수양하는 것은 ‘원숭이가 자루 속에 들어간다(호손입포대, 狐孫入布袋)’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하니, 그 아내가 대답하여 이야기한 말이 “당신이 벼슬길에 나가는 것이 어찌 메기가 대나무줄기를 오르는 것과 다르겠는가何異鮎魚上竹竿耶”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아마도 매성유가 벼슬길에 나갈 당시에는 벼슬에 오르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든지, 아니면 매성유 개인의 성품이 세상의 진애(塵埃 : 티끌)에 물들지 않으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점어상죽鮎魚上竹의 뜻은 “메기는 비늘이 없으므로 매끄러운 대나무를 오르기는 어려우나, 입으로 댓잎을 물어 능히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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